소비를 통하여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인간의 정체성은 생산을 통해 형성된다. 

                                                             - 신영복, <담론>

<전략>

  글이 공해를 일으켜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시대에 살면서 바른 글쓰기를 하려고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쓰는 글이 공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글쓰기가 공해를 일으키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발표도 문제가 된다. 무엇이든지 쓰는 대로 다 발표해서는 안 된다.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발표하고, 꼭 남들이 읽어서 유익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설 때만 발표해야 한다. 또 같은 발표도 한 가족이나 한 직장 동료들에게만 읽히는 글, 그 지방 사람들에게만 보여줄 글은 그렇게 해서 그 이상 더 퍼뜨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글을 함부로 쓰지 말고(꼭 할 말만 쓰고), 깨끗한 말로 쓰는 일이다. 

                                                                                                            - 이오덕, <우리 문장 쓰기>, (한길사, 1994) 중에서

백년 도마

                                       박형준


도마가 그립다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고향 집 부엌에

도마는 여전히 거기 있을까


감나무로 만든 도마

우리 집 여자라면

한 번쯤 단단히 스쳐갔을

칼집 난 자리가

집안의 손근이 되어버린

백년 도마


다른 건 몰라도

생명선은 길어서

그대로 있을지 몰라


가마솥에 밥물이 끓어 넘치면

솥뚜껑을 열어제치고

뭉텅뭉텅 김치를 썰어

척척 밥에 감아 먹던

치매 할머니와


얼굴 한 번 못 보고

시집와선

눈썹과 눈썹이 달라붙은

신랑이 미워 첫날밤에

양미간의 눈썹을 뜯어 넓혔다는

어머니의 매운 손매와


김칫독에서 막 꺼낸

살얼음 낀 김치를 썰 때

도마에서 나던 초겨울의 소리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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